우리 학부 어느 교수님이 내게 전해왔다. 히빙라인에 나가 1학년 학생들을 면담하는데 학생들 말이, 물리 교수가 숙제를 많이 내 학교 생활이 힘드니 숙제 좀 그만 내라고 하라고.
숙제 안 내면 나도 편하고 좋다. 하지만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하지 않으면 학생들 실력이 안 생긴다.
선택과목을 쉬운 책으로 가르치면 학생들이 몰려오나, 조금 수준 있는 책으로 가르치면 수강 인원 미달로 폐강된다. 한 번 생각해보자.
1960년대에는 해기교육에서 배우는 내용은 일반 공대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아주 수준이 높았다. 당시에 해기사가 되면 공무원으로 취업한 친구의 10배를 벌었다고 한다.
1970년대 이후 점차 산업화가 되고 공대에서 배우는 교과내용 수준이 계속 올라갔다. 해기교육 수준도 올라갔지만 일반공대만큼은 아니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해기교육 수준이 일반 공대의 평균정도로 내려갔다.
현재는 고등학교만 나온 해기사도 선박을 운용한다. 반면에 삼성이나 현대 같은 회사는 4년제 대학만 나와가지고는 전문적 업무를 볼 수 없다. 해양대 교육 수준이 4년대학 최하위권이다. 해양대에서 배우는 교재는 일반 대학에서는 수준이 너무 낮아(전공이 달라서가 아니라) 교재로 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반대로 우리 대학에서 일반 대학 교재를 쓰면 너무 어려워 학생들이 못 따라간다. 그러면 결론이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모들이 기를 쓰고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데, 좋은 대학일수록 수업 수준이 높고 숙제는 어렵고 양도 많다 . 예습하지 않으면 수업에 못 들어가고 주말마다 집에 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 대학일수록 기를 쓰고 들어가려고 한다.
너무 어려운 것을 가르치면 학생들이 싫어하여 자퇴하므로 쉬운 것만 가르치라고 한다. 과연 쉬운 것만 가르치는 것이 자퇴를 막는 길일까?
자퇴하는 학생들을 보면 우리보다 더 수준이 높은 교육을 하는 학교로 입학한다. 따라서 자퇴하는 학생들은 하위권은 별로 없고 대부분 상위권이다. 즉, 우리 학교 수준이 너무 높아서 자퇴하는 것이 아니고 너무 낮아서 자퇴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 수준 낮고 쉬운 것만 가르치면 자퇴 불에 기름을 붙는 것이다. 학생들이 더 나간다.
수업 수준을 올리면 상위권이 아니고 하위권이 나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하위권 학생은 나가도 우리 대학보다 좋은 대학으로 가기 어렵다. 따라서 안 나간다.
우리 학교에서 기관공학부가 가장 우수한 교수진을 가지고 있고 교육수준도 가장 높다고 자부한다. 해기사가 목표라면 졸업만 하면 되므로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든 별 상관이 없다. 해기사 이후에 무엇을 하느냐를 생각하면 그때는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학교에서 수준이 높은 것을 배우면 졸업하고 수준이 높은 업무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고, 수준이 낮은 것을 배우면 낮은 업무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는 어느 쪽이 많을까? 당연히 수준 높은 일을 하는 쪽이 많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좋은 학점을 받아도 수준 낮은 것을 배우면 나중에 수준 낮은 업무를 할 가능성이 크다. 공부 않고 학교 다니는, 즉 쉬운 길만 찾아다니는 것이 당장은 편할지 모르나, 멀리 보면 스스로를 보수가 낮은 업무로 내 보내는 일이다. 학점이 덜 나오더라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야 나중에 졸업하고 수준 높은 일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